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리 내전 (문단 편집) == 국제사회의 개입 == [[파일:external/farm9.staticflickr.com/8373819367_c76fab9793_c.jpg|width=500]] 말리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는 프랑스 공군 미라주 2000D 전투기. 가장 먼저 내전에 개입한 것은 [[프랑스]]였다. 투아레그나 이슬람주의자나 말리 정부에 비하면 서방에 적대적인 건 마찬가지기에, 프랑스는 말리 정부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총 4,000여명 규모의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제 대형 수송기 [[An-124]]까지 빌려서 말리로 급전개되었다. 이후 프랑스군 6명이 전사하였고, 그들 중 1명은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이었다.[* 이걸 가지고 프랑스군은 수송기도 없는 열악한 상황이라고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는데, 미군도 아프간에서 서방측 수송기로 실어나르기 힘든 물건을 러시아제 수송기를 임대해서 수송하곤 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급히 전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장비를 투입할 수 있는 대형 수송기라면 빌리든 구걸하든 어떻게든 구해와야 하는 것이 맞고, 결과적으로 프랑스군은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또한 2013년 1월 11일부터 [[미라주 2000]]과 [[라팔]]이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 기지를 거점으로 삼아 프랑스 지상군과 정부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작전명은 '세르발'(Opération Serval). 사태 초기엔 중장비를 바로 동원하긴 힘들었는지, 장갑차량은 비교적 경장갑의 [[VAB]]와 90mm 포를 탑재한 [[ERC-90]] [[장갑차]] 등 차륜형 장갑차들을 위주로 대동하였으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VBCI 보병전투차[* 이쪽도 일단 차륜형이긴 하지만, 먼저 전개되었던 VAB 같은 물건들과 달리 본격적인 IFV이다.]나 케사르 자주포를 투입하기 시작하였다. 1월 20일에는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3번함인 Dixmude에 VBCI 장륜 장갑차 16대와 지휘형 4대, 케사르 자주포 6대 외 105mm 포를 탑재한 AMX-10RC 차륜형 장갑차까지 탑재하고 22일 말리로 항해를 시작하였다. [[파일:external/farm9.staticflickr.com/8387509084_382c84e12b_b.jpg|width=500]] 말리에 증파되는 프랑스군 차량들. 수송기는 우크라이나제 [[An-124]].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수송기다.[* 단 [[볼가-드네프르 항공]]은 러시아 회사이다.] 리비아 때와 유사하게 국제사회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참전, 심지어 이번에는 그 [[러시아]]조차도 지지했다!!! 다만 [[무슬림 형제단]] 출신의 [[이집트]]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는 프랑스의 무력개입을 반대했다. ~~그리고 그는 1년 후 그렇게 싫어한다던 무력 진압을 펼치다 쫓겨난다~~ 이 와중에도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정부군은 2013년 1월 10일 코나를 빼앗겼고, 북부 진격의 거점으로 삼았던 거점도시 [[몹티]]까지 반군이 몰려왔다. 프랑스군이 참전할 가을 즈음에 프랑스군과 함께 밀어버리려고 준비하고 있던 전략거점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말리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프랑스군이 조기 참전해 특수부대와 공군력을 동원해서 반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12일 코나를 탈환했다. 그렇게 한숨 돌리나 했는데... [[파일:external/farm9.staticflickr.com/8387790382_40196b7ac0_c.jpg|width=500]] [[파일:external/farm9.staticflickr.com/8391753387_dcd273fc1e_c.jpg|width=500]] 말리에 도착한 프랑스군 증원병력. 위의 장갑차는 [[ERC-90]], 아래의 헬기는 [[에어로스페시알 가젤|가젤 무장헬기]].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페이크]]인지 임기응변인지 반군이 몹티나 코나와는 한참 떨어진 [[https://www.voakorea.com/a/1583372.html|디아발리에 갑툭튀]], 주둔하던 말리군을 끔살시키고(주둔군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기습에 당한 모양) 남쪽에 있는 세구로 진격했다. 이슬람 반군 지도자인 오마르 울드 바하마는 디아발리 점령 이후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아프가니스탄 못지 않은 지옥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프랑스군의 공습을 비웃으며 지상전으로 덤비라고 조롱했다. 디아발리는 수도 바마코에서 200km 남짓 떨어진 곳인데다 여기를 뺏기면 코나와 몹티 지역이 수도 지역과 차단되어 포위당하므로 프랑스군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2013년 1월 16일 프랑스 특수부대가 말리군과 함께 디아발리 탈환을 위해 시내로 진입, 시가전을 벌였다. 이 날, [[스페인]]에서는 수송기를 파견하는 것을 승인했고 [[독일]]도 [[C-160]] 수송기를 파견하는 것을 승인했다. 결국 세구까지 진출한 반군은 격퇴되었으며, 1월 18일에는 코나와 디아발리가 다시 프랑스군과 정부군의 수중에 들어왔다. [[파일:external/farm9.staticflickr.com/8391714121_c6c53994db_c.jpg|width=500]] 말리에 도착한 나이지리아군 병력. 또한 [[아프리카 연합]]에서도 프랑스를 지지하며 [[나이지리아]], [[토고]], [[세네갈]], [[부르키나파소]], [[차드]] 등 9개 국가에서 지원군을 파견했다. 미국과 영국도 [[C-17]] 수송기와 무인정찰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알 카에다 반군과 연관되어 있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알제리]] 인아메나스 가스전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에 의한 [[https://mn.kbs.co.kr/news/view.do?ncd=2600002|인질극이 발생]]했는데, 이들은 말리 내전에 대한 프랑스의 개입중단을 요구하며 파병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테러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프랑스의 말리 내전 개입과 동시에 [[소말리아]]에 억류되어있던 프랑스 정보요원을 구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출동했는데(이 과정에서 미군의 도움이 있었다는 듯) 결과는 [[블랙 호크 다운]]까지는 아니지만 실패. 민병대와의 격전 끝에 특수부대원 1명 사망, 1명 실종, 정보요원도 사살됐다고 한다. 그런데 [[민병대]] 쪽에선 정보원이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두 작전이 동시에 벌어진 것으로 보아 연관관계가 있다는 추측이 있다.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30123112708679.jpg]] 파괴된 [[알 카에다]] 반군의 [[BRDM-2]] 장갑차들. 2013년 1월 27일 프랑스-말리 연합군이 북부 최대도시인 [[가오(도시)|가오]]를 탈환하고 1월 28일에는 유서 깊은 도시 [[팀북투]]까지 탈환했다. 팀북투는 15세기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반군이 퇴각하기 전에 이곳 도서관에 있던 귀중한 고문서 수만 점을 불살랐다는 보도가 있어 전 세계 문화계의 분노를 샀으나 다행히 대부분의 고문서는 안전한 곳으로 옮겨져 화를 면했다고 한다. 1월 29일 [[영국]]은 200여명의 병력을 추가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전투병력은 아니고 물류, 첩보, 정찰 분야에 투입될 병력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총 4억 5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아프리카 연합 역시 5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